자기 전에 조금 씩 읽기 좋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쓴다는 행위 자체가 좋았어서, 조금씩 보고 있었다. 읽으면서 나랑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작가로서의 삶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항상 마감에 쫓기지만 그럼에도 글이 써지지 않아서 고뇌하는 부분도 보였고, 육아일기로서도 굉장히 재밌고 생생한 모습을 남겨서 신기하기도 했다.

여러 일기들을 읽으면서 내 생각과 어느정도 통했던, 남기고 싶은 몇 개의 인용 문장을 남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나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때때로 그게 너무 답답하고 절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아무리 답이 없는 것 같은 순간이라도 어떤 종류의 답은 있게 마련이라고, 비록 그게 내가 바라거나 원했던 답은 아닐지라도.

p.42

요즘은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낸것만 같은 시간과 경험이라도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생각. 말하자면 모든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거웠던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p.53 – 54

도대체 기준이 뭔지 모르겠고, 그냥 다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는지, 그리고 나는 왜 책을 쓰는 지…

p.99

“만약 아빠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게. 정말 그랬다면 한층 홀가분한 마음으로 훨씬 잘 놀아줄 수 있었을 텐데.

p.117

다들 느끼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속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 지속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이 지속 가능했던 적도 없다. 그런데 다들 별일 아닌 척한다. 좋은 생각이 있는 척, 바꿀 수 있는 척한다. 왜들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내 말이.
p. 212

문득 오늘 하루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실은 매일매일이 그렇다고, 지난 2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고, 지난 5년이나 9년도 마찬가지라고, 내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아는 건 다만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뿐이라고, 밤의 바다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기에 앉아 있다고…

p. 244 – 245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을 두고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는데, 언젠가 나윤이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 될까?

p. 259

일기를 쓰고 목록과 단상, 잠언을 작성한다고 해서 고통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자신이 이제 작가로서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시기가 왔을 때 일기 쓰기는 내가 아직 어떠한 종류의 작가구나 하는 안도감을 줄 수 있다. (수많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손택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자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1979년에도 손택은 여전히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다.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전부 빠짐없이 쓸 것. 늘 노트를 소지할 것.”

p. 270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배우고 욕망하고 느끼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물론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p. 274